버그(Bug) 1화

버그 (BUG) — 1화

1부 — 실행

강민준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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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11분.

알람이 울렸다. 민준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더듬어 알람을 껐다. 5분 뒤에 또 울릴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알면서도 다시 눈을 감았다. 5분이라는 시간이 주는 심리적 위안이 실제 수면보다 더 중요했다.

반지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언제나 기울어져 있었다. 지면보다 낮은 창이라 햇빛이 비스듬하게, 마치 비밀처럼 들어왔다. 천장은 낮았다. 벽지는 끝이 조금 들떠 있었다. 그것을 집주인에게 말한 적이 있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 후로는 그냥 그것을 바라보며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들뜬 벽지 끝. 그것이 오늘의 첫 번째 풍경이었다.

5분 뒤 알람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일어났다.

욕실에서 양치를 하면서 거울을 보았다. 서른두 살.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은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뭔가 흐릿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있어야 할 무언가가.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거울 속의 사람이 조금 낯설어지고 있었다.

그는 면도를 했다. 찬물로 세수했다.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편의점 커피 두 캔, 먹다 남긴 치킨 반 마리, 유통기한이 이틀 지난 두부,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레몬 하나가 있었다. 레몬은 산 기억도 없었다. 아마 마트에서 다른 걸 사다가 덤으로 넣어준 것일 텐데, 그 이후로 몇 주째 거기 있었다.

그는 커피 캔을 하나 꺼내서 당겼다. 차가운 커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감각. 아침에 제일 먼저 느끼는 온도가 차가운 것이라는 사실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대학교 때는 어머니가 따뜻한 국을 끓여주셨다. 지금은 캔커피였다. 서울이란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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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준비는 25분이면 끝났다.

셔츠를 고르고, 바지를 골랐다. 구두를 신었다. 현관문 앞에서 오늘 갖고 나가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점검했다. 지갑, 교통카드, 이어폰, 스마트폰. 됐다.

계단을 올라가면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그 순간이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민준은 그 순간을 좋아했다. 낮고 좁은 공간에서 탁 트인 곳으로 나오는 전환. 공기가 달랐다.

골목으로 나왔다. 아침 햇빛이 건물 사이로 비스듬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맞은편 빌라의 화단에 심어진 무궁화가 피어 있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아스팔트 위에서 각자의 리듬을 냈다. 어디선가 빵집 냄새가 났다. 아, 저기에 빵집이 있었구나. 몇 년을 이 골목으로 다녔는데 오늘 처음 인식했다.

그는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회사 단톡방에는 밤새 쌓인 메시지들이 있었다. 팀장 최재환 부장이 어제 밤 11시에 보낸 메시지가 맨 위에 있었다.

‘내일 오전 중으로 4분기 기획안 수정본 제출해주세요. 어제 임원보고에서 방향성 피드백 있었어요.’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시간이 찍혀 있었다. 11:47 PM.

민준은 그 시간을 바라보았다. 밤 11시 47분. 최재환 부장은 그 시간에 업무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삶인지, 그것이 자신의 10년 후 모습인지, 잠깐 생각했다가 접었다. 지금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확인했습니다. 오전 중으로 올리겠습니다.’

열네 글자를 입력하고 보냈다. 이모티콘을 붙일까 잠깐 고민했다가 붙이지 않았다. 이모티콘의 온도를 지금 계산하기에는 이른 아침이었다.

──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오전 8시 22분의 신도림역은 전쟁 같았다. 쏟아지는 사람들이 계단 위로 아래로 교차했다. 환승 통로는 어깨와 어깨가 맞닿는 밀도였다. 누군가의 캐리어 바퀴가 민준의 발등을 스쳤다. 아프다는 말을 할 타이밍도 없이 그 사람은 이미 저 멀리 가 있었다.

그는 플랫폼으로 내려가 열차를 기다렸다.

옆에 선 사람의 이어폰에서 희미하게 음악이 새어나왔다. 그 앞에 선 사람은 주식 앱을 보고 있었다. 숫자들이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가득했다. 그 앞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 웹툰을 읽고 있었다. 각자의 화면 속에 각자가 살고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10센티미터 거리인데 실제로는 아무도 여기 없는 것 같은 이상한 군중이었다.

열차가 들어왔다. 사람들이 일제히 앞으로 밀렸다.

민준은 문 쪽 구석을 잡고 섰다. 향수 냄새, 땀 냄새, 섬유유연제 냄새가 뒤섞였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이어폰을 끼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3년째 거의 바뀌지 않은 재생목록. 새로운 음악을 찾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귀찮아졌다.

뉴스 알림이 하나 떴다.

[美 물리학자들, 우주가 홀로그램일 가능성 제기 — 새로운 양자역학 연구 결과]

민준은 엄지로 알림을 쓸어 없앴다. 그런 기사는 몇 년에 한 번씩 나오는 것이었다.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창밖으로 터널의 어둠이 흘렀다. 민준은 자신의 얼굴이 검은 유리에 희미하게 반사되는 것을 잠깐 바라보았다가, 다시 기획안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것이 사고 이틀 전 아침이었다.

──

회사는 여의도 어딘가의 21층짜리 건물 14층이었다.

민준의 자리는 창가에서 세 번째였다. 창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매일 보다 보니 그냥 강이었다.

“민준씨, 왔어요?”

팀 막내 이서연이 먼저 인사했다. 입사 2년차. 눈이 크고 표정이 풍부했다. 아직 이 회사에 물들지 않은 에너지가 있었다. 민준은 그 에너지가 앞으로 몇 년이나 살아남을지 가끔 생각했다.

점심은 혼자 먹었다. 순댓국 한 그릇. 뜨겁고 짭짤한 국물이 식도를 내려갔다. 오늘 세 번째로 느끼는 온도였다. 처음으로 따뜻한 것이었다.

퇴근은 저녁 8시였다. 기획안 수정이 세 바퀴를 돌고 나서야 최 부장이 됐다고 했다.

집에 도착해 치킨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누워서 유튜브를 틀었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들이 줄지어 나왔다. 이미 본 것들과 비슷한 것들뿐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하나씩 보다가 어느 순간 잠들었다.

이것이 강민준의 화요일이었다. 수요일도 비슷할 것이었다.

사고는 목요일에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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